Dec 25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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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쓰려고 했다가 너무 거창해질 것이 미리 두려워 미뤄두고 있던 소재인데, 역시 내 깜냥에 깊이있게 다룰 수는 없고, 그저 오해만 좀 해소시키고자 한다.

리버럴 아츠. Liberal Arts.

스티브 잡스옹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익숙해진 이 단어는 국내에 ‘인문학’으로 번역되어 돌아다니곤 한다. 그래서 생기는 오해와 부작용이 좀 심각한 듯 하여, 아주 간단히 시답잖은 지식 하나 풀어놓을까 한다.

이공계 출신들에게 리버럴 아츠를 물어보면 상당수가 ‘뭥미?’ 한다. 인문학이라고 얘기하는 그거라고 얘기하면 ‘아, 그거~’ 한다. 그래서 리버럴 아츠가 뭐라고 생각하냐고 하면 ‘문과 과목’ 아니냐고 한다.

OTL

위키가 언제나 정답은 아니지만 위키피디아에서 리버럴 아츠(영문판)의 뜻을 살짝 가져와 본다.

The term liberal arts denotes a curriculum that imparts general knowledge and develops the student’s rational thought and intellectual capabilities, unlike the professionalvocational and technical curricula emphasizingspecialization. The contemporary liberal arts comprise studying literaturelanguagesphilosophyhistory,mathematics, and science.

영어를 보면 두드러기가 나는 분들을 위해 어색하지 않게 번역을 좀 하면 아래와 같다.

리버럴 아츠라는 것은 ‘일반적인’ 지식을 가르치고 학생들의 이성적인 사고와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커리큘럼(학제)을 말한다. 리버럴 아츠는 특수함(보통은 전문성)을 강조하는 전문가적, 직업적, 기술적 커리큘럼과 다르다. 현대의 리버럴 아츠는 문학, 언어, 철학, 역사, 수학, 과학을 공부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리버럴 아츠가 나타난 배경을 생각해 보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살짝 오버같고(라고 쓰고 나도 썰을 풀 정도로 잘 아는 것은 아니고…라고 읽는다)…

아무튼 ‘인문학’이라고 그래서 문과 과목이라고 생각했던 분들은 위에서 ‘수학’과 ‘과학’에 깜놀했을지도 모르겠다.

5세기 경의 리버럴 아츠는 문법, 변증법, 수사학(쉽게 얘기하면 설득을 위한 발표와 작문이라고 봐도 무리 없겠다), 지리, 수학, 천문학, 음악의 7가지를 모아 리버럴 아츠라고 했다고 한다.

현대와는 비슷한 듯 하면서 살짝 다른데, 이것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면 그럴듯 한가…고민해 보면 다음과 같이 이해하는 것이 그나마 오해가 없을 것 같다.(이 정의가 옳다는 것이 아니라-그런 것은 학계에 계신 분들이 잘 정의해 주시고- 일반인이 리버럴 아츠라는 말을 들을 때, 국내에서는 ‘인문학’이라는 말을 들을 때 머리속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해서 이해하시면 큰 오해는 없다는 말씀이다)

리버럴 아츠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교양 있는 지식인’이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공통적인 소양과 관련된 학문들의 모임

정도로 휘리릭 번역을 해 버리시면 큰 오해는 없을 것 같다.

리버럴 아츠는 문과과목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과, 공과 과목도 아니고…그저 그 시대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지식인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교양’을 갖췄음을 보여주기 위해 기본적으로 몸에 익히고 꾸준히 관심갖고 공부해야 하는 학문들이다.

문과생이라고 인문학을 잘 이해하고 있느냐.

개뿔.

지금까지 문과 졸업한 사람 가운데 기본적인 수학과 과학 기초가 되어있는 사람을 그다지 보지 못했다. 관심이라도 있느냐… 우리 나라에서는 아마 수학, 과학 싫어하는 사람이 문과가는 것이 정설이지?

문학, 언어, 철학, 역사, 수학, 과학을 현대의 리버럴 아츠에 포함된다고 하는데, 이것이 고정된 것이냐 하면…천만에. 중세 시대의 리버럴 아츠를 보면 어디까지나 이 학문들은 ‘시대’를 반영한다. 5세기 경의 지리, 천문학은 그 당시에 지식인들이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사실, 나도 위의 리버럴 아츠에 최소한의 관심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교양’을 갖출 정도가 되느냐…따져보면 수준 미달이다.

문학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교양과목 시간에 접했던 단편적인 지식이 다이다.

언어는 영어와 일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부러워할지도 모르겠지만, 실력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면 낯간지러운 수준이다. 블로그만 봐도 알겠지만 한국어도 아직 제대로 못 익혔다. 자연어, 프로그램 언어, 정규식…뭐 다 어설프다.

철학? 이 블로그 자체가 혼자 중얼거리는 수준이다. 거창한거? 밑천 드러난다.

역사? 틈만 나면 눈에 보이는 추천된 글은 긴 글이라도 읽어보려고 애쓰긴 한다. 역사라고 우습게 보시는 분들이 있을까봐 이것이 얼마나 방대한 것인지 알려드리자면 역사의 종류가 무척 많다. 민족사(국사도 사실상 민족사 관점으로 쓰여져 있다), 지역사, 종교사, 예술사, 음악사, 과학사, 문명사, 인류사 등등 각각의 역사가 만만치 않다.

수학이야 이공대 나온 사람들이 문과 나온 사람들 보다야 조금 낫겠지만, 대학 교양 수준만 따져봐도 수준 미달이다. 이 글 읽으시는 분들 가운데 미분 방정식은 고사하고 미분과 적분의 의미, 확률과 통계, 기본적인 기하, 입시생이 보면 웃을지 모르지만 행렬(리니어 알게브라/알지브라)과 집합, 벡터, 각종 변환(Transform)을 이해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과학도 확실히 문과 나온 사람보다 조금 나은 정도이지 ‘교양’을 얘기할 만큼 현대 과학에 대해서 아느냐…(그냥 먼 산을 바라본다). 아, 과학에 자신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필자가 생각하는 현대 ‘교양’수준의 과학 지식이 어느 정도인지 살짝 힌트를 드리면 이런 것이다. (어디까지나 기준은 평균적인 일반인이 아니라 ‘교양있는 지식인’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아래 질문에 어물어물 하시는 분들은 어디 가서 지식인이라고 함부로 깝치고 다니지 않는게 좋겠다-_-. 가만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 필자도 어디가서 지식인 흉내 내고 다니지 않는다. 국어는 잘 못하지만 주제는 쬐끔 안다.)

DNA, RNA를 유전자와 비교/구분해서 설명 가능 하신가?

튜링 머신, 폰 노이만 머신을 현대의 컴퓨터와 연관지어 설명 가능 하신가?

인터넷과 웹을 구분해서 설명 가능하신가?

월식과 일식이 생기는 이유를 설명 가능하신가?

힉스(Higgs)가 무엇인지, 현대 물리학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 가능하신가?

열역학 제 1, 2 법칙과 영구기관을 연결하여 설명 가능하신가?

생각나는대로 쓰긴 했지만, 위의 질문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지식인’이라면 어느 정도의 스키마를 갖고 있어야 할 것들이다. 어렵다고 느끼시나? ‘지식인’ 행세를 그만 두시길 바란다. 당신들이 지식인 행세를 하기 때문에 아주 많은 일들이 엉망이 되어 수습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말도 못하게 들고 있다. 모두 자신있게(검색 없이 바로) 답하실 수 있나? 댓글 좀 달아주시라. 우리 친하게 지냅시다. 굽신 굽신.
별거라면 별거고, 별거 아니라면 별거 아니다.

아무튼 리버럴 아츠가 인문학으로 번역되면서 웃기지도 않는 오해가 많이 벌어지고 있다. 아이폰과 같은 것을 만드는 데 있어서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 가운데 ‘수학’과 ‘과학’을 얼마나 잘 아시고 그런 말을 하는지 물어보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말 그대로 보면 리버럴은 자유를 뜻한다. 아츠는 예술로 번역하면 안 된다. 비슷한 어감을 갖는 말을 우리 나라말로 찾기가 쉽지 않은데(예술이라는 말 자체가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말이라 Art를 단순히 한문의 ‘예’와 ‘술’로 설명하면 의미 전달에서 오는 오해가 있다.), 굳이 비슷한 느낌으로 우긴다면 필자는 ‘끝장’을 들겠다-_-;; 우리가 예술이라고 할 때, 그것은 인간이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고정)관념 등을 넘어선 것을 의미하곤 한다. 각 분야의 한계를 넘어서거나, 통합하거나, 다른 관점을 보여서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감동을 불러일으킬 때, 우리는 ‘예술’이라는 말을 쓰곤 하지 않던가. 뉴앙스가 일치하진 않는다. 미묘하게 다른 것 같은데…아무튼 그나마 비슷한 느낌이 그런 것이다.

리버럴 아츠는 기본적으로 자유롭게, 사고의 제한을 갖지 않고 극한을 추구하는 것이다. 과거의 극한(예술 수준의 지식들)을 배우고, 그것을 넘어서는 생각을 아무렇게나, 체계없이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리버럴 아츠로 분류된 것들을 가만히 뜯어보라. 사실상 극한이 있을 수 없는 것들이다. 끝이 없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고, 한계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자유롭게 극한을, 끝장을, 예술을 추구하고 고민하고 생각하고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각 분야의 지식을 톺아가는 것이다. 당대의 지식인, 그것도 교양있는 진짜 지식인이라면 겉핧기 정도가 아니라 높은 수준으로 체화시키려고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리버럴 아츠는 ‘자유로운 영혼’, ‘자유로운 지성’이 있는 이상 한계가 있을 수 없는, 끝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직업이나 전공, 전문 분야랑 상관이 없어도 당대의 ‘지식인’이라고 얘기하고 싶으면 최소수준의 교양은 갖추고 얘기하자. 평소에 관심도 없었다면, 지식인 행세를 관두자. 민폐다. 문과 나왔다고 인문학으로 번역된 ‘리버럴 아츠’에 소양이 있는거 절대 아니다. 사기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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