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 072009
 
Pinterest

가능한 불가능: 텔레포트

 

지니는 자신이 인류 최초로 텔레포트(공간이동, 혹은 순간이동)의 성공적인 피험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바로 몇 초 전에 지구의 한 실험실의 암실 같은 좁은 공간에 들어가 가슴졸이고 있었는데 창 밖을 통해 보이는 것은 매혹적인 푸른 빛의 지구였던 것이다.

 

 

“텔레포트를 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처음에 제안을 받았을 때 지니는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텔레포트가 불가능 해서가 아니었다. 이미 벌키한 물질에 대해서는 상당히 큰 질량까지 순간이동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일부 과학자들이 자원 합성 우주 콜로니에서 합성한 물질을 지구나 달로 전송하는 실험을 하고 있고, 도착 예정지의 오차도 초창기 수만 킬로에서 지금은 수백 킬로 수준까지 와 있다. 그 양만 해도 지금은 톤 단위이다. 심지어 쥐나 토끼와 같은 작은 생명체도 순간이동에 성공했다고 보고된 사례가 몇 건이나 있고, 그 가운데 일부는 교차검증까지 마친 상태다. 이런 실험결과들은 지니가 14살이 되던 해에 발표된 불가능 리스트가 나오기도 전에 있었던 일이다.

 

텔레포트는 우주의 법칙에 위배되지도 않으며, 당시의 공학 기술로도 구현 가능 했었다. 텔레포트에 의한 시공간 왜곡이 현실 세계에 주는 부작용(Side Effect)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인류가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영향을 주는 것은 적어도 몇만 년 이후의 일이라고 계산되었다. 몇만 년이다. 그 사이에 이런 부작용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으리라. 여러 연구 성과가 인간의 텔레포트가 이론상 충분히 가능함을 알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능 리스트에 인간의 텔레포트가 올라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갈만한 일이었다. 성공적인 텔레포트 이전에 희생될 사람들, 그것이 설령 호기심 충만한 자원자의 자발적 희생이라 할지라도 ‘실험’을 장려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지니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주변에서는 지니를 푼수같다고 개그우먼 취급을 했고, 실제로 지니가 개그에 소질이 있기는 했지만 사실 그녀는 십만 명밖에 없다는 완전뇌(Perfect Brain)의 보유자였다. 그것도 성공적인 케이스였다. 영아기에 일찌감치 전뇌를 이식하고, 주기적으로 뇌신경을 생성/보강하는 약물을 주입받았다. 전뇌는 BNI(Brain Network Interface)를 통해 네트(NET)와 무선으로 항시 연결되어 있다. 지구상의 대부분의 정보, 사실상 무의식적인 해킹을 통해 모든 정보에 접근이 가능한 그녀였다. 평소에는 1초 이상의 고민이 없던 지니였지만 그녀는 2시간 동안 30테라 바이트가 넘는 정보를 네트를 통해 다운로드 하였다. 대부분이 텔레포트와 관련한 이론과 실험 시도, 그리고 실험 결과와 관련한 것이었다. 최신의 과학 논문과 카릏낙의 정보까지 교차검증 하였다. 자신에게 텔레포트를 제안한 사람에 대한 정보도 찾아보았다. 이스라펠 가쉬라는 이름을 가진 중년의 과학자와 연결고리가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몸담았던 단체까지 샅샅이 뒤져보고 난 후에 지니는 대답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인류 최초의 텔레포트 피험자가 되지요”

짧은 시간동안 뇌와 전뇌를 풀가동시킨 지니는 허기를 심하게 느꼈다. 커다란 컵에 담긴 코코아에 설탕을 걸죽할 때까지 부어 녹이면서 다시 한 번 시뮬레이션을 해 봐도 예상 성공 확률은 10%를 넘지 못했다. 그것도 웬만하면 가능한 쪽으로 치우쳐서 계산한 결과였다. 무엇보다 이동한 자신의 ‘뇌’가 정상일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앞으로 10년 정도 충분한 리소스를 활용해서 자신이 직접 연구에 나선다면 성공확률을 50% 이상, 아니 60%까지 올려놓을 자신이 있었지만 그렇게 연구실에 틀어박혀 자신의 능력을 소모하고 싶은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단지 사는게 지루해서 성공하면 끝내주게 재미있겠다고 생각했고, 실패해도 그건 그거대로 의미있다고 생각했다. 여차하면 자신의 기억 전부를 네트에 백업해 놓고 텔레포트 이후에 다운받으면 신체 일부가 텔레포트에 실패해도 사는데 지장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백업을 위해 일주일 넘게 누워있을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짧고 굵게 사는 것도 멋지지. 서른 넘게 충분히 재미있는 인생이었어. 마음에 맞는 반려자를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 지금까지 없었던 것이 앞으로 나타나리란 보장도 없고…’

 

이스라펠 가쉬는 자신을 소개할 때 본명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을 크로노스 하마탄이라고 소개했다. 가명을 쓰는 것이나 지속적으로 연락하는 사람이 스무 명도 안 되는 부분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하지만 철이 들고 나서 자신이 직접 선택한 성과 이름으로 사는 사람이 드문 것도 아니고, 가상 세계에서만 사는 사람도 꾸준히 늘어가고 있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는 3일 뒤에 실험실로 데려가겠다고 하고 돌아갔다.

실험실을 네트에서 미리 찾아보기는 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한 장소가 생각과 달라 지니는 적잖이 당황했다. 실험실은 도시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숲속에 있었는데 가장 가까운 마그레브 정거장에서도 300 킬로는 떨어진 곳에 있었다. 숲속으로 들어가기 전의 도로는 아스팔트여서 참을만 했지만 이동을 바퀴달린 전기차로 하다보니 숲속에서의 승차감은 엉망이었다. 길도 아닌 곳을 덜컹거리며 멀미가 날 정도로 좌우로 흔들어대니 지니는 첨단 과학에서도 감히 시도하지 못한, 심지어 불가능 리스트에까지 오른 인간 텔레포트를 하러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납치되어 봉변을 당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언제든지 상황을 알릴 수 있도록 네트의 접속이 끊기지 않게 조심하느라 걸어서 돌아다녔으면 멋졌을 숲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물론 눈에 비친 모든 정보는 지니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전뇌를 통해 처리되어 인공해마에 기록되고 있었다.

 

지난 3일 동안 지니는 신변 정리를 했다. 죽으러 가는 것은 아니지만 실패할 확률이 컸고, 만약 실패한다면 텔레포트에 실패한 자신은 텔레포트 전의 자신과는 다를 것이 분명했다. 팔이나 다리와 같은 신체 일부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가벼운 실패에 속할 것이다. 심각한 문제는 보통 사람들보다 섬세하고 민감한 완전뇌가 불완전하게 전송되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몸이 온전하게 전송된 것 같아도 지니의 뇌 일부가 제기능을 못하면 인간 텔레포트는 실패이다. 불가능 리스트에 오른 이유도 다른게 아니라 바로 이 문제 때문이다.

 

지니는 네트에 자신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 어떻게 처리해 줬으면 좋을지를 기록해 놨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자신이 기록해 놓은 데이터에 접근하지 않을 경우 친구 몇 명과 친척 몇 명에게 해당 기록이 전달되도록 프로그램 하였다. 지니는 텔레포트에서 생길 수 있는 거의 모든 예상 결과에 대해 세심하게 할 일을 정해 놓았다. 설사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10^29개의 원자들이 우주 공간에 흩어져 재조합되지 못하더라도 자신을 아는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가상의 홀로그램 자아까지 프로그램 하였다. 일반인 프로그래머라면 실력이 좀 우수하더라도 1년은 꼬박 밤샘작업을 할 정도의 결과물이었다. 지니와 친하지 않은 사람이 네트에 접속하여 누군가 지니를 호출하면 특별히 눈치가 빠르지 않으면 지니가 살아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하마탄씨, 생각했던 것보다 실험실이 아담하네요. 텔레포트를 위한 에너지는 충분한가요? 제가 보기에는 텔레포트는 커녕 제 유전자와 분자구조 분석할 컴퓨터의 전력 공급도 힘들어 보이는데. 네트에 기록되지 않은 시설이라도 있는건가요?”

 

지니는 결국 참지 못하고 생각한대로 말을 뱉고 말았다. 행동을 하기 전에 그 똑똑한 뇌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하고 난 후에야 생각을 하는 것이 지니 인생 31년의 노하우라면 노하우였다.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행동을 취하고 수습을 하는 것이 더 흥미진진하다는 것을 안 것은 다섯 살때의 일이었다.

 

“하하. 눈치가 빠르시군요. 불가능 리스트에 올라있는 실험이다보니 네트에 기록되지 않는 방법으로 시설을 확장했습니다. 가능한 불가능의 경우 엄밀하게 말해서 ‘금지’된 것은 아니라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지도 모르지만…아무래도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면 연구 관련 일보다 다른 일에 바쁠 것 같아서요.”

 

“그렇군요. 네트에 기록되지 않으면서 시설을 늘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텐데. 꽤 많은 HM이 들었겠는걸요?”

 

“예상하신 대로입니다. 30여대의 HM이 열심히 돌아갔죠. 하하. 1년은 CM수준의 장치를 만드는데 HM을 활용했구요. CM이 만들어지고 나서는 생각보다 수월했습니다.”

 

 

지하 150미터 아래로 천천히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지니는 간혹가다 자신의 전뇌가 네트와 불통되는 것을 느꼈다. 평생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그것도 단 몇 초의 단절을 경험했을 뿐이었다. 지니는 불안함에 심장이 떨리는 소리가 귀로 직접 들리는 것 같았다.

 

실험실은 40년 전부터 쓰이던 민간 시설을 확장한 것이었다. 입자 가속기의 일부가 분명해 보이는 커다란 원통이 복도 오른쪽에 있었는데 규모가 상당한지 복도는 직선으로밖에 안 보였다. 반경이 얼마나 큰지 계산하려고 하는데 네트와의 접속이 완전히 두절되었다. 지니는 연구실과 관련한 자료를 전뇌로 다운받아 놓치 않은 것을 후회했다. 3일 전에 확인한 정보의 대부분은 네트상의 주소만 남겨두고 있었다. 네트가 연결이 안 되자 과학자들이 준비를 하는 동안 할 일이 없었다. 그저 침대에 누워 신체검사를 받으며 인공 해마에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할 뿐이었다.

 

 

지니는 불안감을 가지고 사람 두 명이 들어가 서면 꽉 찰 것 같은 원통 챔버안으로 속옷만 입고 들어갔다. 문이 자동으로 닫히자 안은 완전한 암흑이었다. 전뇌에서 시력과 관련한 전처리와 후처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해 봤지만 여전히 암흑일 정도로 빛이 없었다. 밖에서는 윙윙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하마탄을 포함한 여섯 명의 과학자들이 분주하게 장치를 조작하는지 시끌시끌 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기계 장치의 소음에 묻혀 잘 해석되지 않았다. 간신히 해석한 몇 단어는 ‘준비해’, ‘9시 25분’, ‘접속 끊겼나?’, ‘확인 바람’, ‘배는 어떻게’ 정도였다.

 

“곧 전송합니다. 되도록 움직이지 말아주세요.”

 

하마탄의 목소리가 챔버 안으로 울려 퍼졌다. 그렇지 않아도 긴장으로 솜털까지 곤두서 있는데 정신을 잃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흥분하기 시작했다. 밖에서 윙윙 거리는 소리가 커졌다가 작아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전 모르프 히우스입니다. 텔레포트는 성공적인 것 같은데, 제 말 들리시나요?”

 

“네, 들립니다. 실험이 성공한 건가요?”

 

지니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성공했다고 느꼈다. 적어도 자신의 뇌에 이상은 없어 보였다. 팔다리가 이상하다는 느낌도 없었다. BNI를 가동시켜 위성 신호를 잡으려고 했지만 잡힌 신호는 지구쪽 통신시설이었다. NET에 접속하여 싱크를 시도했다. 현재 자신의 위치가 안 잡힌다. 시간은 9시 25분 35초를 지나고 있었다. 시간이 잡히고 다시 한 번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NET를 뒤졌다. 고도가 3만 6천 520 킬로미터라고 뜬다. 이게 오류가 아니라면 정지궤도에 있다는 뜻이 된다. 불과 몇 초만에 지구에서 3만 6천 킬로미터가 떨어진 우주 공간의 유인 위성 혹은 콜로니 안의 챔버 안으로 이동한 것이다.

 

“문을 열겠습니다.”

 

감탄부터 나온다. 전방의 창을 통해 깜깜한 우주에 별이 보석처럼 빛났다. 속옷만 입었다는 것도 깜박한 채 지니는 챔버에서 걸어나와 유리창 앞으로 다가섰다. 챔버 밖에 있던 과학자들이 자신의 몸을 훑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창문 밖으로 지구가 보였다. 흥분으로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렸다.

 

 

텔레포트에 성공한 최초의 인간이 된 것이다.

 

 

To be continued.

Pinterest